모비 딕
책 소개
이야기는 단순하다. 선원 이스마엘은 어느 날 바다가 보고 싶어 포경선에 올라탄다. 그가 탄 배는 피쿼드호. 선장은 에이해브(Ahab). 그는 멀쩡한 사람이 아니다. 지난 항해에서 흰 향유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고, 그 원한이 이미 이성을 넘어서 있다. 에이해브는 선원들을 설득해 모비 딕을 사냥하는 여정에 나서고, 배는 대서양과 인도양과 태평양을 누빈다. 고래와의 최후 대결은 사흘 동안 이어지고, 결말은 파멸이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이스마엘 하나뿐이다.
허먼 멜빌은 자신이 직접 포경선을 탄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그 덕분에 고래 해부학부터 기름 추출 방법까지 세밀한 묘사가 가득하다. 처음 출간 당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멜빌은 실패한 작가로 생을 마감했다. 소설이 진정한 걸작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운명을 살다 간 책이다.
핵심 메시지
집착은 파멸의 다른 이름이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 맞서 싸우겠다는 인간의 오만이다. 그 오만이 자신뿐 아니라 무고한 선원들까지 함께 끌어내린다.
자연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흰 고래는 에이해브에게 악이지만, 고래 입장에서는 그저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자연은 인간의 도덕 범주 밖에 있다. 인간만이 거기에 의미를 덧씌운다.
운명에 맞서는 것과 수용하는 것의 차이. 이스마엘은 살아남는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판단을 유보한다. 에이해브는 맞서다 죽는다. 어떤 삶의 태도가 옳은지, 소설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고래는 상징이고, 바다는 인생이다. 멜빌은 포경 소설을 쓴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세계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썼다. 모비 딕은 죽음일 수도, 신일 수도, 내가 이기지 못하는 무언가일 수도 있다.
공동체와 광기. 에이해브 한 사람의 집착이 조직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죽는 선원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속한 조직과 사회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이 소설의 형식은 지독히 불친절하다. 등장인물 이스마엘이 화자로 나서서 줄거리를 이끌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작가가 직접 고래의 해부를 설명하는 챕터가 수십 쪽 이어진다. 고래의 머리 구조, 기름 정제 방법, 고래 분류학. 그것이 서사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소설의 몸체를 이룬다. 멜빌은 독자가 편하게 읽히는 소설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는 19세기 미국의 산업과 야만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철학 에세이를 쓰고, 비극을 구성했다.
에이해브라는 인물은 셰익스피어적 비극 영웅의 계보를 잇는다. 그는 명백히 잘못되어 있지만, 그 잘못 속에 인간의 보편적인 오만이 들어 있다. 내가 당한 상처에 집착하는 것, 내 고통의 원인을 하나의 대상으로 특정하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충동. 에이해브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작은 에이해브를 본다. 이스마엘은 그 반대편에 있다. 관찰자이고 생존자다. 이 두 인물의 대비가 소설 전체의 긴장을 만든다.
흰색의 상징성을 다루는 챕터 ‘고래의 흰색(The Whiteness of the Whale)’은 단독으로 걸출한 철학 에세이다. 멜빌은 흰색이 왜 두려운지를 논증한다. 흰색은 순수와 공포를 동시에 담은 색이다. 규정할 수 없는 것,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의 색. 모비 딕이 그 색을 가졌다는 것은 이 고래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읽기 힘들다. 분량부터가 600쪽이 넘고, 중간에 고래 해부학 강의가 수십 쪽 펼쳐진다. 소설인지 백과사전인지 헷갈리는 구간이 반복된다.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 딕을 쫓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생기지만, 그 긴장감이 고조되다 다시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기대하고 펼쳤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고 나면 묘하게 남는 것이 있다. 에이해브가 마지막 전투에서 뱉는 말들, 이스마엘이 홀로 바다를 떠다니다 구조되는 장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뒷모습이 오래 머리에 남는다. 그것은 공포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다. 이 책이 줄거리 소설이 아니라 분위기와 철학의 소설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다르게 읽힌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강하게 받아 든 것은, 집착이 얼마나 조용히 이성을 갉아먹는가, 하는 것이다. 에이해브는 처음부터 미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탁월한 항해사였다. 단 하나의 실패, 단 하나의 상처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일상에서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에이해브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추천 & 비추천
- 집착과 강박의 심리를 문학으로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
- 미국 고전 문학의 정수를 한 권으로 경험하고 싶은 독자
- 인간과 자연, 운명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싶은 독자
- 빠른 전개와 명확한 기승전결을 기대하는 독자
- 장황한 묘사와 긴 설명에 쉽게 인내심을 잃는 독자
-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 시간 만에 읽을 책을 찾는 독자
인상적인 구절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부르게.”
“Call me Ishmael.”
— 허먼 멜빌, 『모비 딕』, 1장 첫 문장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마지막까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의 심장에서 너를 찌르리라. 증오 때문에 내 마지막 숨결을 너에게 뱉으리라.”
“…to the last I grapple with thee; from hell’s heart I stab at thee; for hate’s sake I spit my last breath at thee.”
— 에이해브 선장의 마지막 말, 1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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